성소실

"하느님의 사랑, 그 마르지 않는 샘물" - 문영균 세례자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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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사랑, 그 마르지 않는 샘물" (문영균 세례자 요한, 2017년 1월 입회)


언제부터였을까요. 하느님께서 저를 부르신다고 느꼈던 때가, 그리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때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기 위해 제 성소여정을 찬찬히 떠올려보다가 문득 다행이라는 안도감, 그리고 감사함이 크게 올라옵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그 길을 걷고 싶다는 마음을 항상 가슴 속 깊은 곳에 고이 접어 간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그 열망이 강렬해 불타올랐던 적도 있고 때로는 꺼질듯이 희미했던 적도 있었지만 다행히 그 불씨는 사그라들지 않았고 지금 다시 예전처럼, 어쩌면 그때보다 훨씬 더 크고 아름답게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까닭 덕분이겠지요. 


군사훈련을 받을 때의 일입니다. 견디기 힘든 뜨거운 기운을 머리 위에서부터 온몸으로 받아내며 시작했던 2012년 8월 어느 날의 행군. 제 몸을 비껴간 그 강렬했던 나머지의 햇볕이 땅 속에 숨어 있다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발바닥을 타고 다시 위로 천천히 올라오던 그 잊을 수 없는 기분. 그 절망의 긴 터널을 얼마 더 걸어야 끝이 날까 생각할 힘조차 나지 않을 때, 그러다 저 멀리서 붉은 태양이 다시 몸을 드러내려고 하던 그 찰나 비로소 막을 내릴 수 있었던 그 60km 행군. 그러한 고통 속에서 머물러 있으면서도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들이킬 수는 없었습니다. 일시적으로 갈증이 해소될지는 몰라도 금방 더 큰 목마름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추억이라 말할 수 있는 4년 전의 기억 속에 잠겨 있노라니 불현듯 영원한 사랑을 갈구하던 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사랑받고 싶었습니다. 여전히 사랑받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오면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그래도 부족하다는 느낌은 항상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평생 동안 이 숙제를 풀어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세상의 것으로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그 갈증이란 문제를 하느님의 사랑으로는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상 제 곁에서 머물러 계시면서 지켜봐 주시는 하느님. 스스로 죄인임을 느낄 수 있게 해주시고 그럼에도 당신의 벗으로 불러주시는 아버지. 이 길을 걸어갈 수 있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시면서도 단 한 번도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주신 우리 주 하느님 아버지. 그런 하느님과 함께라면 평생 목마르지 않고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랑하고 싶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받은 끝없는 사랑을 다시 돌려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보다 더 열렬히 아버지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또한 넘치는 그 사랑을 가장 소외받고 가난한 우리 이웃들에게 나누고자 합니다. 누구보다 사랑의 손길이 필요하지만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사랑받을 수 없는 환경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과 함께하는 수도자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들에게 귀 기울이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어주며,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주는 그런 삶을 꿈꿉니다. 


그러면서 겸손하고 싶습니다. 평생을 교만하게 살아온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벗이 됨으로써 아버지께 누가 되진 않을까하는 걱정이 마음 한구석에서 올라옵니다. 그러다 송봉모 신부님의 저서 『예수』의 내용 한 구절을 떠올려봅니다. 

 

“주님은 왜 열둘을 구성할 때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이들로 구성했을까? 겸손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극히 평범하지만 겸손과는 거리가 먼 저를 불러주셨습니다. 그렇기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제 능력을 믿고 교만하기 보다는 매순간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할 수 있는 겸손을 배우고 그렇게 살아가는 그런 수도자가 되고자 합니다.


감사드릴 분들이 참 많습니다. 먼저 부족한 저의 입회를 허락해주신 정제천 관구장 신부님과 안정호 신부님, 그리고 입회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셨던 다섯 분의 신부님들과 수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18개월 지원기 생활 동안 옆에서 저의 성소를 찾아갈 수 있게 성심성의껏 도와주셨던 성소실 식구들. 안석배 신부님, 김영훈 신부님, 김우중 수사님과 모든 스탭 신부님들, 수사님들 감사합니다. 또한 저의 성소여정에 함께해주신 모든 예수회원분과 지원자 형제들에게도 감사의 인사 전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신앙은 부모가 자식에게 남겨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값진 유산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속 깊은 형,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항상 응원해주고 기도해주었던 여동생, 고맙습니다. 그리고 예수회와 이냐시오 영성을 소개해주셨던 큰이모를 비롯한 우리 식구들, 정말 감사합니다. 기도해주신 모든 은인 분들 덕분에 부족한 제가 입회 허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염치없지만, 앞으로도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저도 여러분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이신 하느님 아버지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저라는 미천한 존재를 통해 당신께 보다 더 큰 영광이 바쳐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당신께서 항상 제 옆에 살아계신다는 사실 잊지 않고 제 뜻이 아니라 언제나 당신 뜻대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