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번의 삶, 그분을 닮는 삶" - 도윤호 세례자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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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의 삶, 그분을 닮는 삶" (도윤호 세례자 요한, 2014년 2월 입회)
소감문을 작성하기에 앞서 오랜만에 군 복무를 하며 틈틈이 쓴 일기장을 펼쳐봅니다. 상병이 될 무렵의 페이지 위로 성소에 대한 동경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습니다. 그 시절 저는 매우 불안한 존재였습니다. 날이 밝을 동안에는 하루도 예외 없이 주어진 일과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일상이었으나, 밤이 찾아오고 대부분이 잠자리에 들고 나면 저 자신과 마주하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얀 종이에 토해내듯 새카맣게 써 내려간 일기는 그런 제 고독의 흔적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저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단 한 번뿐인 삶, 이를 온전히 살아내기 위한 가장 좋은 몫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마음 속 보물찾기 끝에 고교시절 잠시 접어두었던 길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이 지나고, 쌈짓돈 모으듯 꼭꼭 챙겨둔 말년 휴가를 사용하게 되었을 무렵 처음으로 성소모임을 찾게 되었습니다. 비록 예수회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었지만 가슴 속에 품고 있던 단 한가지는 ‘주님 안의 벗들’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표현에는 의미 있는 삶을 향한 저의 오랜 목마름을 해소 시켜줄 것만 같은 강한 끌림이 있었습니다. 지난 일 년여의 시간 동안 끌림은 어느덧 확신이 되었고, 정말 운이 좋게도 하느님은 저를 제 계획보다 조금 더 일찍 당신의 친구로 초대해 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일기장을 펴고 성소를 동경하던 때의 느낌, 마음가짐을 떠올려 봅니다. 매일 같이 이어진 성찰과 다짐들, 신앙과 행복에 대한 단상들을 보며 과연 오늘의 나는 전에 비해 얼마나 다른 사람,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지 저울질해 봅니다. 부끄럽지만 예전과 비교하여 크게 좋아진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는 지난 한 해를 예수회 지원자로 보내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소모임에 꾸준히 참석하면서도 내면에서는 이 길에 대한 확신과 불안이 조울증처럼 끊임없이 반복되어 마치 뒤늦게 사춘기를 겪는 듯 힘겨울 때가 많았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충동이 들 적마다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과 성모님께 의지하고 처음의 마음을 되새기는 것뿐이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기도에 미숙한 저이지만 주님께서는 제 기도를 들으시고 매번 필요한 위로를 주셨습니다. 성소가 제 안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로 떠오른 그날 이후로, 미미하지만 그 것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디뎠던 걸음이 작은 결실을 맺게 해주신 주님께 커다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 여정의 곁에서 언제나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으셨던 성소실 최성영 신부님과 조창모 수사님, 박경웅 수사님께도 감사 드립니다. 또한 예수회 안에서 만난 다른 모든 신부님과 수사님들께도 감사 드립니다. 그분들의 행복한 미소가 저로 하여금 많은 용기와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언제나 느린 것 투성이인 아이였습니다. 걸음을 비롯한 행동이 느릿느릿 하다며 타박을 많이 받았고 어쩌다 보니 주변 친구들보다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까지도 조금씩 늦게 가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언제부턴가 느리다는 것은 제게 무척 익숙하고 저의 일부인 듯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이번에 입회하는 형제들 중에서는 제가 막내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위로 형 다섯 명이 한꺼번에 생기다 보니 아직까지도 마냥 신기한 마음입니다. 앞으로의 수련생활에서 나타날 저의 말과 행동의 치기 어림을 나이 어림으로 무마할 수 있게 되기를 내심 바란다면 그건 욕심일까요^^?
입회까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지금, 다른 누구보다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채웁니다. 하나뿐인 외아들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그 마음을 저로서는 영원히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사실상 통보와도 같았던 아들의 결정을 넓은 이해와 사랑으로 보듬어 주신 것, 제 모든 사랑을 담아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 제가 수도자의 길을 걷는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께 달린 일이지만 ‘무얼 하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라’고 가르쳐주셨던 부모님이 아니었더라면 결코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입회를 앞두고 부족하기만 한 저의 모습이 이 길에 합당한 것인지 마음에 걸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의 나약한 부분을 하느님께서 채워주실 것임을 믿습니다. 단 한 번의 삶, 제가 바라고 기도하는 대로 삶이 전개되길 바라지만 그건 저만의 뜻으로 되진 않을 터입니다. 현재의 시계바늘 위에 걸터앉아 하루하루에 충실 한다면, 어느 순간 그분을 닮은 이의 모습에 닿을 수 있을 거라고 소망해 봅니다. 언제나 기도하는 수도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