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마리아 주 우 [성 레옹 이냐스 망젱 사제, 성녀 마리아 주우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7.9)]

성소실
2023.07.07 17:25 132 0

본문

mary zhu wu.jpg

<사진 출처 - Queen of China Catholic Ministries>

 

주자허는 중국 북부의 즈리성과 산동성의 경계에 있는 거대한 회색 평원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이름의 유래는 “주씨 가문의 강”이라는 뜻이다. 그 가문의 일부는 예수회원들이 베이징에서 즈리성 깊숙한 곳까지 진출했던 18세기에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10세기 초, 주 가문은 강 근처에 정착하여 그 강에 주자허라 이름 붙였다. 1900년, 그곳에는 드넓게 펼쳐진 수수밭 사이에 흙으로 지어진 작은 오두막에 사는 300여 명의 주민들이 있었다. 그들은 평평한 지붕을 가진 높이 솟은 성당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 모여 살았다. 성당의 십자가는 그 모든 마을에서 보일 만큼 높이 솟아 있었다. 1882년부터 중국에서 선교사 생활을 했던 42세의 프랑스 예수회원 레옹 이냐스 망젱은 주자허의 가톨릭 공동체에서 사목 활동을 하였다. 그는 주 딘슈안이라는 유능한 관리인이자 훌륭한 전술가인 마을의 한 중년의 도움을 받으면서 사도직 활동을 할 수 있었다. 50세인 그의 아내는 마리아 주 우였는데,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온화한 성품의 그녀는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느님을 섬기며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에 앞장서던 인물이었다. 그녀는 유명세나 명예를 찾지 않는 이였는데, 그녀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망젱 신부는 의화단 운동 기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잔혹한 학살의 중심에서 박해받았다.

 

의화단 운동이 발생하게 된 이유, 정치적 모략, 전쟁의 양상 등은 차치하고, 1900년 여름 근처 이웃 마을에서 박해로 인한 수천 명의 가톨릭 난민들이 발생했을 때조차 주자허에서는 의화단의 활동이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 문제였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하여 마을에는 3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이는 평소 마을 인구의 10배에 달하는 수였다. 7월 17일 마을은 4,500명의 중무장한 의화단-청 황실 연합군의 공격을 받았다. 며칠 전만 해도, 마을 사람들은 주 딘슈안이 설치한 방호벽의 보호 아래에서, 적들의 공격을 막고 포를 탈취하기도 하였다. 망젱과 주자허로 피난 온 그의 동료 예수회원 폴 덴은 매일 아침 미사를 집전하고 종일 고해를 들었으며, 저녁에는 방호벽을 돌며 보초병들을 안심시켰다. 다음날, 마을을 지키는 천여 명의 사람 중 유일하게 전투 경험이 있던 주 딘슈안은 방호벽에 올라 적들의 포를 이용하여 병사들을 훈련했다. 그러나 같은 날 저녁, 이미 절반 이상의 마을 수비대는 전사하였고, 주 딘슈안은 거꾸로 발사된 포에 가슴을 맞았다. 근처에 서 있던 망젱은 죽어가는 그에게 달려와 병자성사를 주었다. 셋째 날이 되면서 전황은 절망적으로 치달았고, 전장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들은 도망치기도 하였다. 마을에는 달아날 힘이 없는 여성과 아이들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7월 20일 이른 아침, 결국 군인들이 마을을 점령했고, 본당의 젊은 여인들과 교리교사를 하는 여성들이 처음 죽임을 당했다. 85명의 다른 여성들과 아이들은 공포에 빠져 고아원으로 도망치거나 우물에 뛰어들며 익사하였다. 도움을 청하는 그들의 울음과 비명은 이틀이나 이어졌다.

 

 천명에 가까운 마을 주민 대부분은 두명의 예수회원에게 영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성당으로 대피했다. 마지막 미사를 드리기에는 너무나 급박한 상황이었기에, 망젱과 덴은 제대 앞에 앉아 고해를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거나 그저 마지막 순간을 기다릴 뿐이었다. 마리아 주 우는 남편을 잃은 슬픔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신뢰하고 천상 모후이신 성모님께 기도할 것을 권고했다. 오전 9시무렵, 의화단과 황군은 문을 부수고 들어와 성당이 연기로 가득해질 때까지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동안 공황상태가 이어졌지만, 사제들은 기도 안에서 사람들을 한데 모아 참회 예식기도와 통회의 기도를 읊어나가며, 총탄이 빗발치는 그곳에서 사람들에게 사죄경을 주었다. 이때, 마리아 주 우는 총탄 속에서 몸을 일으켜 망젱 앞에서 팔을 쭉 뻗으며 그녀의 온 몸으로 망젱을 보호하는 위대함을 발휘하였다. 얼마지나지 않아 총탄이 그녀를 강타했고, 그녀는 제단의 난간으로 쓰려졌다. 망젱은 한 손으로 묵주기도를 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십자가상을 움켜쥐었다. 그 또한 곧 총격의 희생자가 되었으며, 의화단과 황군은 성당을 봉쇄하고 불을 질렀다. 성당 안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기에 질식하여 숨졌으며, 망젱과 덴과 같이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이들도 성당의 지붕이 무너지는 그 처참한 순간 불에타 죽음을 맞이했다. 도망치거나 배교를 함으로써 살아남은 신자들은 500여명에 불과했다. 특히 여성들은 노예로 팔려가거나 베이징에 포로로 끌려갔는데, 그들은 사창가로 보내졌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 주 우의 정신은 주씨 가문의 강에서 피의 강이 되어버린 주자허에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남편이 적들에게 맞서 마을을 지키는 동안 그녀는 마을 사람들의 신앙과 용기를 북돋았고, 자신의 사목자를 구하느라 스스로의 목숨도 내놓았다. 1955년 교황 비오12세는 두명의 예수회원과 다른 53명의 순교자들과 함께 그녀를 시복했고, 2000년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들을 시성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적용하기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