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클라베르 사제(Saint Peter Claver, 축일 9.9., 1580-1654))

성소실
2023.09.04 15:15 26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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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51.9.21. 시복(교황 비오 9)

-     1888.1.15. 시성(교황 레오 13)

-     흑인 노예들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하는 선교사들의 수호성인

-     흑인 노예들의 수호성인

-     아프리카, 아메리카, 콜롬비아 선교의 수호성인

-     별칭: 흑인의 사도

 

1580년에 태어나 1654년에 선종한 베드로 클라베르는 당시의 사회적 관습이 노예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음에도, 남아메리카에 도착한 노예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그는 35년 동안 예수회원으로서 소외된 이들을 향한 한없는 연민의 마음을 몸소 보여주었다. 모든 사람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의 모상인 그들을 위해 봉사하라는 알퐁소 로드리게스 성인의 메시지를 잊지 않고 살아간 것이었다.

클라베르는 대학 시절 바르셀로나에서 예수회원을 처음으로 만났다. 그는 1602년 예수회에 입회하였고, 마요르카섬의 알퐁소 로드리게스 수사가 문지기로 있는 몬테시온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였다. 이때 만난 알퐁소 로드리게스 수사는 훗날 시성이 될 때, 이미 교회 안에 그의 거룩함에 대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덕성 있는 형제였다. 로드리게스 수사는 하느님을 위해 더 큰 일을 하고자 하는 젊은 클라베르의 열망을 북돋아 주면서, 신세계의 선교사로서 삶을 고민해 볼 것을 추천해 주었다.

 클라베르는 선교하러 가고자 청했고, 관구장은 1610년 그를 콜롬비아로 보냈다. 보고타에서 신학 공부를 마친 후, 그는 카르타헤나로 카리브 해안의 카르타헤나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1616년 사제품을 받았고, 여생을 아프리카에서 그곳 항구로 끌려온 노예들을 돌보며 살았다. 카르타헤나는 노예를 수용하기 위해 스페인에서 지정한 두 곳의 항구 중 하나였으며, 그 당시 연간 1만 명의 노예들이 그 항구를 통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유입되었던 곳이다. 노예들은 대부분 오랜 항해를 마친 후 끔찍한 상태로 이곳에 내려졌다. 클라베르는 자선을 통해 얻은 음식을 들고 이 항구의 부두에서 노예들을 기다렸다. 이전에 노예 생활을 하였던 이가 통역을 해주면서 그와 함께했는데, 스페인 예수회원인 클라베르는 배에 올라 갑판 위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선창으로 내려가 아픈 노예들을 돌보았다. 상처들을 소독해 주고, 연고를 바르고 붕대를 감아줬으며,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예들은 카르타헤나에 며칠밖에 머물지 않았기 때문에, 클라베르는 노예들이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분주히 준비하여야 했다. 교리를 가르치는 것은 제한적이었지만, 클라베르는 수많은 노예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는 나병환자를 돌보는 병원에도 방문하였으며, 독일과 영국의 전쟁 포로들도 돌보았다.

 1650, 카르타헤나에 전염병이 창궐하여 클라베르는 그 병에 걸린 이웃들을 돌보았고, 결국 그 자신마저 병을 얻게 되었다. 그 병의 후유증으로 그의 말년은 4년 동안 병상에 누워서 지내게 되었지만, 그는 그마저도 자신이 마땅히 갚아야 할 보속으로 여기며 지내다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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