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파브르 사제 [예수회 고유 전례력 - (8.2)]
본문
- 축일: 8월 1일
- 1872.9.5. 시복(교황 비오 9세)
- 2013.12.17. 시성(교황 프란치스코)
성 베드로 파브르 사제 시성에 관한 아돌포 니콜라스 예수회 총장의 서한
저는 초기 예수회원이며 “침묵의 동반자”였던 베드로 파브르(1506-1546)를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시성하신 이날에 충만한 기쁨 안에서 모든 예수회원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교황께서는 당신의 생일이기도 한 이날에, 아버지 하느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선물을 보편 교회에도 함께 선물하였습니다.
베드로 파브르의 시성은 예수회의 Kairos, 즉 1814년에 있었던 예수회 복권이라는 거대한 사건의 200주년과도 연관된 의미를 지닙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가 사랑하는 사부아의 형제 파브르는 우리에게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나, 결코 우리 스스로 완성할 수는 없음에도 계속해서 순례의 여정으로서 나아가야 하는 우리의 예수회원으로서의 삶의 원의를 되돌아보고 다시 불러일으킬 동기와 원동력을 제공합니다. 파브르가 보여줬던 투명하고, 자발적이며,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은 우리가 “주님의 동반자”로서 인내할 힘을 줍니다. 이러한 힘은 “주님께서 모든 것을 존재하고 제각각의 역할을 수행하며,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서 모든 일을 하신다”라는 이냐시오의 방식에서 나오는 확신이기도 합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께서 해 주신 일 하나도 잊지마라.”베드로 파브르는 자기 마음의 문을 겸손되이 열기 위해 시편 103장의 이 구절을 잊지 않았습니다. 파브르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취한 본질적인 자세를 몇몇 심오한 단어로 요약해 주는데, 그것은 찬미, 기억, 그리고 감사입니다.
이냐시오, 하비에르, 라이네즈, 보르하, 카니시오와 같은 파브르의 초기 예수회 동료들의 괄목할 만한 인간적, 종교적 업적과 비교하며 우리는 때때로 파브르가 맺은 열매들이나 그의 성품을 과소평가할 수도 있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의 삶과 행보에서 그가 진정으로 이냐시오의 영성을 살았고, 주님과의 관계에 깊은 뿌리를 내린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파브르는 진정한 예수님의 벗이었습니다.
1546년 8월 1일, 40세의 이른 나이에 파브르는 로마에서 선종하였습니다. 그는 예수회를 공동 설립한 파리의 초창기 예수회원 중, 1541년 8월에 선종한 장 코뒤르에 이어 두 번째로 선종한 예수회원입니다. 파브르는 선종을 얼마 앞두고 코임브라에서 출발해 로마에 도착했는데, 길고 고된 여정으로 지친 상태였습니다. 라이네즈, 살메론, 르제와 같은 그의 동료들이 트렌토에서 그를 다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유럽 전역에 퍼진 “파브르가 8월 1일 세상을 떠나, 더 나은 공의회를 열게 되었다”라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난 지 47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스승”파브르가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통한 그만의 독특한 방식들로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또한 “우리가 마음을 열고 그리스도께 우리 삶의 중심을 내어줌”이라는 그의 표현을 통해 우리 각자가 배울 수 있는 바는 무엇일까요?
하느님의 섭리로 1529년 9월, 베드로 파브르,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로욜라의 이냐시오가 콜레쥬 상트 바르브의 학생으로서 만나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5년이 지나 학업을 마치고 여러 경험을 공유한 그들은, 1534년 8월 15일 몽마르트르에서 파브르의 주례로 성찬례를 가졌습니다. 여기에는 초기 7명의 “주님 안의 벗”들이 함께 했는데, 그들의 시선과 마음은 예루살렘이라는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회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모임의 시작이기도 하였는데, 오늘날까지 이 모임은 생명력을 가지고 여러 놀라움 가운데 활동하고 있습니다.
1535년 3월 이냐시오가 그의 고향 아즈페시아로 떠났을 때, “스승”파브르는 “가장 믿음직한 형제로서”이 모임을 돌보고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당시 베드로 파브르는 어떤 방식의 지도력을 발휘했을까요? 그의 관심과 우정을 통해 “미소한 형제들”의 숫자와 덕행이 날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대화와 영신 수련을 통해 클로드 르제, 장 코뒤르, 파샤스 브로에를 동료로 모았습니다. 말년에는 프란치스코 보르하와 베드로 카니시오를 예수회에 입회하도록 이끌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마음에 이미 타오르고 있던 불길은 또 다른 곳에도 불을 지피기 시작했습니다. 파브르에게서 우리는 “하나 된 영혼”들로서, 그 지체들의 성장하고 유지될 수 있도록, 그가 사랑했던 “주님의 벗들”이 잘 조직될 수 있도록, “거룩함과 정의로움이라는 선한 열망이 꽃피우기를”끊임없이 갈망할 수 있도록 언제나 돌보고 보살폈던 한 형제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1577년,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시몬 로드리게스는 31년 전에 세상을 떠난 베드로 파브르를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대하고 그들과 대화하는 것에 있어 내 인생에서 만난 누구보다 매력적이고 온화하며, 점잖은 사람이었다. ……겸손하고 수수한 성품과 매력을 통해 그는 하느님을 위해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파브르는 우리에게 있어 신앙에 대한 연설의 대가이며, “어떠한 주제이든 누구에게나 하느님에 대하여 생각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적절한 것들을 어려움 없이 찾을 수 있는”사람이기도 합니다. 1534년 초, 파리의 생자크의 이웃이었던 이냐시오와 영신 수련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다른 누구보다 창조주이신 주님께서 피조물들과 어떠한 방식으로 말씀하시는지에 관하여 내적 통찰력을 지니게 되었고, 그러한 통찰을 다른 이들과 섬세하고도 정확하게 나누었습니다. 이냐시오는 그에 대하여 “영신 수련을 주는 것에 있어 가장 탁월한 사람”이라 칭했습니다. 우리는 파브르를 영신 수련의 사람이며,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 바라볼 수 있으며, 아주 다양한 환경 속에서, 완전히 다른 이들에게 “기도의 순서와 방법을 안내”할 상황들이 생길 때마다 언제나 창의적인 사람으로서, 진정한 이냐시오 영성을 가진 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의 대화가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하느님의 현존을 깊이 있게 인식한 그의 내면적 삶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파브르의 내면을 통해 우리는 역사와 세상 속에서, 그리고 시간에 뿌리를 두지만 “위로부터 내려오는”모든 것들과 모든 순간의 선물들을 통해 살아가는 신비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파브르는 어떠한 상황도, 장소도, 순간들도 하느님과 만날 기회로 여겼었습니다. 파브르 선생은 당신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지라도, 기도의 스승입니다. 그는 예수님과의 우정은 그리스도 생애의 신비, 그의 성소에 대한 “성령님의 가르침”, 그리고 “은총을 얻기 위해 성찰하는 것”을 알고 경건히 기도함을 통해서 자신을 그리스도화 하는 것에 기초를 둔다고 이해했습니다. 파브르는 예수님과 성모님, 천사들과 성인들, 순교자들과 자신의 “수호성인”들과 끊임없는 담화 안에서 기도하였습니다. 그중에는 그의 위대한 영적 지도자이자 어린 시절의 스승이었으며, 성인이라 여겨졌던 베드로 벨리아르도 있었습니다. 그는 자연의 구성, 계절의 변화, 수많은 반대와 약함에 대해서마저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하였고, 교황을 위해, 예수회는 물론이고, 이교도와 박해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온몸과 감각들을 이용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삶 안에서의 신비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자신을 성전으로 삼으셨다고 믿으며, 계속해서 주님과 대화하였습니다.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거리에서 설교하며, 독일에서 회담하고, 스페인 알칼라와 바야돌리드, 그리고 독일에서 대학을 설립하고, 로마에서 신학을 가르친 그의 다양하고도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사도직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아마도 그리스도에 뿌리를 두고 기반을 두었던 이러한 정신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파브르는 훗날 동료들이 “활동 중의 관상가”라고 부르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경험과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활동 중에도, 화해의 달인으로서 탁월함을 보였습니다. 이냐시오는 파브르가 대화하는 데 이러한 탁월함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첨예한 갈등과 대립이 있는 유럽 한복판으로 그를 파견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파브르의 활동은 초창기 예수회원들이 회헌에 나와 있듯 “불화한 이들을 화해시키는”사도직에 자신을 아낌없이 헌신했던 중요한 사례 중의 하나입니다. 지난 총회의 정신과 같이, 파브르는 신학적 대격변, 종교적인 문제들로 인한 여러 도전, 정치적-교회적 갈등을 겪고 있는 유럽이 일치될 수 있고, 평화를 구축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브롬스와 라티스본은 파브르가 이러한 갈등의 세력들이 점점 더 서로에게서 멀어져가는 것을 보고 크게 슬퍼했으며, 그러한 슬픔을 이기고 이해와 화합을 추구하고자 하였던 많은 장소 중 하나였습니다. 또한 파브르는 깊이 있는 신학적 토대들을 지혜롭고 사려 깊은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그의 신심과 학식을 자연스레 통합하며, 적절한 제스처를 취하거나 “올바른 말”을 건넸습니다. 그는 영신 수련의 “이웃의 주장을 비난하기보다는 좋게 해석하는 쪽으로 마음을 써야 한다는 것”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하였으며, “이교도들을 돕고자 하는 이들은 더 많은 자애로움으로 진실하게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라는 것과 “더 친숙한 방식으로”그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였습니다. 초기 예수회에서 파브르의 이러한 방식은 현대의 우리 소명에 있어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화해의 가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발자취와 파리에서 그의 사랑하는 동료들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파브르는 초창기 예수회원답게 여행의 신비주의를 구현한 순례자였습니다. 예수회의 기록에는 “파브르는 어느 한곳에 가만히 머물러 있지 않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는 당시 유럽 전역을 거쳐 수천 마일의 거리를 찾아다녔는데, 이는 그의 극기와 유용성, 그리고 순명의 미덕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는 “수많은 여행과 떠돌이 생활”을 하였기에, “영원한 이방인으로서 …… 내 삶의 모든 순간 주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어디든 갈 수 있는 순례자가 될 것”이라 말하며, 순명의 덕에 자신을 투신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마태 8,9)”라고 예수님께 말씀드린 백부장의 말을 자기 삶으로서 증거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집을 옮겨 다녔으며, ……때때로 위험하고 더러운 곳에 내 몸을 던져야 했을 때도 있었다”라고 말한 그의 여정에는 추위, 피로, 혹심한 날씨, 그리고 많은 결핍이 있었지만, 파브르는 언제나 수도자로서 감화를 줄 수 있는 외적 자세를 유지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는 “저에게, 그리고 저와 같은 상황에 있는 이들을 돌봐주고 호의를 베푸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해 주소서”하고 기도하였다.
오늘날, 평온한 행복과 “내적 기쁨”안에서, 우리는 베드로 파브르가 우리의 “본보기가 되는 형제”임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의 현존 방식은 우리에게 있어서 축복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겸손의 본보기가 되어주며, 끊임없이 우리가 “미소한 수도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그의 모습과 가까운 곳에 머무를 때, 우리는 공허한 우월감으로 이끄는 유혹과 오만함으로 치닫는 강력한 힘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습니다. 파브르는 “우리 주 하느님을 가장 우선하여 바라볼 수 있게 하는”삶으로 우리를 불러줍니다. 그리고 이 부르심은 우리의 기본법에 담긴 하느님의 의지를 찾도록 언제나 노력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파브르는 예수회의 지체들에 관심을 두고, 돌볼 수 있도록 우리를 독려해 줍니다. 그는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개방성을 토대로 대화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또한 순명을 통해 사도적 유용성을 성장시키고, 자신의 주도권을 내려놓도록 초대해 줍니다. 파브르와 함께할 때 우리는, “주님께서 저에게 모든 것을 주셨으니, 이 모든 것들을 온전히 당신께 돌려드립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겸손한 “주님 안의 벗”의 시성을 맞이하여, “진정한 즐거움”과 주님께서 당신의 예수회에 가까이 계시다는 감사한 경이로움을 다시한번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파브르를 기억하고, 그에게 머무름을 통해 오늘도 주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한 선하심을 우리에게 내려주시고 축복해주고 계십니다.
지금 이 대림시기는 주님께서 오실 길을 곧게 내어 주님께서 오실 것을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빛을 주시어, 우리가 교회를 위하여 아낌없는 봉사를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의 진실한 벗,
예수회 총장 아돌포 니콜라스, SJ
2013.12.17. 로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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