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삶. 오인돈 신부 S.J.

성소실
2019.11.21 13:53 4,73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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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여년 전, 젊은 수사였던 그는

흙 먼지 속 거친 비포장도로를 몇 시간이고 달렸다.

 

그렇게 가서 겨우 한 사람을 만나 휠체어를 전하고 돌아오는 날이 이어졌다.

그 날들이 지금껏 이 먼 땅에 그를 선교사로 있게 했다.

 

어색한 말씨로 하는 대화와 일년 내내 더운 날씨가 익숙해지도록

그는 이 곳, 캄보디아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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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교육을 전공하셨습니다. 그 길을 걷지 않고 사제의 길을 선택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우리 집안은 감리교 집안이었어요. 외할아버지는 감리교 목사님이셨고 집안 전체가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저에게도 어린 시절부터 신앙은 있었죠. 아버지는 축산 쪽 일을 하셨는데 어릴 적 기억에 남는 아버지 모습은 언제나 남을 위해 나누는 모습이었습니다. 나환자촌을 다니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축산법을 가르치고 도우려는 열의가 강하셨어요. 특별히 주변 수녀원을 다니시면서 수녀원의 자립을 위해 농장 운영하는 법을 가르치시기도 했는데 그 때 아버지를 따라 다니던 수녀원이 제게는 참 편안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수녀님들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시작했습니다. 수녀님들의 삶에서 본 것은 ‘자기 것을 놓고 평생을 헌신하는 삶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82년 12월, 그러니까 고등학교 2학년 말쯤, 그러려면 사제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이 구체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뒤늦게 특수교육학과에 입학을 했고 그 후에 영세를 받았습니다. 특수교육과에 입학한 이유는 오로지 하나, 내가 신부가 되더라도 쓸 수 있는 공부를 하자. 라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강하게 반대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저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셨고 끝내 아버지께서도 저를 믿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제 의지가 확고함을 아셨기 때문이었지요. 이후 가족 모두 가톨릭 세례를 받았고 누구보다도 제가 살아가는 삶을 응원해주셨습니다. 영세를 받고 특수교육 공부를 하며 성소에 대한 시각도 많이 넓어졌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장애인은 내가 도울 대상이고 나는 가난한 이들을 도우며 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특수교육을 공부하다보니 ‘아, 내가 그들을 함부로 대상화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나서야 ‘가진 사람이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구나, 이것은 진정한 도움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왜 예수회를 선택하셨나요?

 

제 성소 여정에서 수녀님들의 영향이 커서인지, 수도성소가 훨씬 맞겠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했습니다. 주위의 수녀님들께서도 그렇게 조언해주셨지요. 다만 저의 고민은 내가 공부한 특수교육을 활용할 수 있는 수도회를 찾자는 것이었습니다. 우연히 예수회의 이종진 신부님을 만났고 이 신부님은 제게 ‘특수교육 배운 것을 쓸 수 있도록 얼마든지 돕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성소모임을 나가기 시작한 것이 대학 2학년 때입니다. 예수회 성소피정에서 예수회의 방식으로 기도를 하며 이 곳에서라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입회했습니다. 그 때가 1993년입니다. 지금까지도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로 기억되는 날이 바로 입회하던 날입니다.

 

 

예수회의 양성과정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 무엇인가요.

 

물론 실습기입니다. 캄보디아와의 첫 만남이었지요. 93년 12월, 당시 지구장이셨던 안병태 신부님께서 로마에서 온 편지 한 장을 읽어주셨습니다. 캄보디아 선교를 시작하는데 사람을 보내달라는 내용이었지요. 그 때부터 줄곧 갈 수만 있다면 캄보디아에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캄보디아에 자꾸 가고 싶다고 하니 현지 사정으로 지금은 못 가고 대신 필리핀에 잠시 가보라고 하셨습니다. 짧은 방문으로 찾은 필리핀에서 당시 아태 지역구(JCAP)를 이끌고 계시던 즐라가 신부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께 캄보디아에 가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 철학 과정이 1년쯤 남아 공부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갑작스레 계획이 변경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석사 학위 받지 않고 캄보디아에 가겠냐고요. 즐라가 신부님이 한국관구에 방문하셨다가 제 이야기를 하신 것이지요. 곧바로 짐을 쌌습니다. 여러 가지 돌아보지 않았어요. 또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곧장 캄보디아 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처음에는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일을 하니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실습기에 제가 가서 맡은 소임은 시엠립의 예수회 봉사단(JSC) 사무소의 책임자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캄보디아 미션에서는 아직 한참 양성 중인 수사인 제게 그 모든 책임과 권한을 주시고 저를 믿어주시며 공동체에 혼자 살아가도록 하셨지요. 예수회에서 나를 믿고 지지해주고 있다는 강한 소속감이 들었습니다. 또한 현지 직원들과 함께 가까이에서 부대끼며 사는 삶이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기쁘고 감사한 모습임을 발견했습니다. 선교사로 사는 일에 대한 열망이 아주 확고해졌지요.

 

 

수련기나 연학기 수사 시절 어려움을 겪은 일은 없으신지요?

 

떠나고 싶었던 적도, 특별히 어려움을 느낀 적도 저는 없습니다. 대부분은 감사의 연속이었습니다. 다만, 2003년 캄보디아에 신부가 되어 갔을 때 내적 위기가 찾아온 적은 있습니다. 당시 난민캠프에서부터 이어져온 1세대 분들과 저희와 같은 2세대의 선교에 대한 생각이 달라 갈등이 있었어요. 그분들께서는 캄보디아가 한창 전쟁을 겪던 어려운 시절에 정착하시고 난민들을 현장에서 치열하게 도왔기 때문에 캄보디아 사람들을 우리가 도와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컸습니다. 반면에 저는 우리가 그들과 같아지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고 강하게 믿었지요. JSC의 부소장로 일하면서 선배들과 많이 부딪혔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 같은 목표를 바라보았으나 방식의 차이일 뿐이었는데 그것이 참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 때에 캄보디아를 방문하신 정일우 신부님께서 제게 “어려울 거다. 그러나 시간을 가져라. 누구의 방법이 일방적으로 맞다고 생각하지 말고 기다리면 네 이야기가 받아들여지는 때가 올 거다. 다만 그 때를 위해 꾸준히 준비해라. 그리고 너는 너의 선배가 닦아온 길 위에 있다. 그분들을 존중해라.“라고 해주신 말씀이 크게 위로 되었어요. 저에게 그 시간을 지혜롭게 넘기게 해준 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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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의 여정은 어떠신지요? 그 속에서 어떻게 하느님을 만나십니까?

 

가난한 사람, 가진 것 없는 사람들과 함께 살았던 것이 제게는 하느님 체험이었습니다. 그분들의 단순함, 함께하려는 마음들이 좋았어요. 그 분들 안에 계신 하느님을 발견하는 일의 연속이었지요. 그리고 예수회원으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인 ‘일상 안에서 하느님 만나는 것’이 선교지에서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처음 3개월 공부하고 시엠립에서 일을 시작할 때, 당시에는 언어도 부족하고 경험도 없어서 어려웠어요. 그 때까진 어린 마음에 내가 뭔가를 잘 해내야지라는 의욕이 넘쳤지요. 제가 있던 JSC에서 하는 일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마을에 가서 그 곳에 사는 장애인들에게 휠체어를 전달하는 일이었습니다. 휠체어를 전달하고 또 휠체어가 필요한 장애인을 만나기 위해 마을에 갈 때마다 우리 직원과 함께 갔는데 그 분은 다리가 절단되어 장애를 지니신 분이었습니다. 그 때의 저는 그 직원이 모는 오토바이 뒤에 타고 마을에 다니는 것 창피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저는 늘 휠체어를 많이 만들어서 더 많은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은데 그 직원은 마을에 갈 때마다 한 사람 한 사람 만날 때마다 한, 두시간 씩 앉아 농담이나 하고 앉아있으니 시간이 아깝고 답답하게만 느껴졌지요. 그러던 어느 날, 마찬가지로 마을에 다녀와 혼자 성체조배를 하고 복음을 읽고 영성체를 하며 성당에 앉아있는데 불현 듯 ‘내가 여지껏 하루 종일 예수님과 같이 다녔구나.’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이라면 그처럼 장애인을 만나기 위해 같은 휠체어를 타고 가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이야기를 들어주셨겠구나. 나는 사람은 보지 않고 휠체어만 봤구나.’ 제게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준 그 직원은 놀랍게도 불교 신자였습니다. 그 날 이후 저는 캄보디아의 새로운 면을 보았습니다. 여기는 결과를 내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한 곳임을, 사람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있는 곳임을 느끼자 이 곳에 있는 일상이 감사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신부님께 예수회에 대한 깊은 자긍심이 느껴집니다.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최근 로마에서 열린 36차 예수회 총회를 다녀온 일이 제게는 예수회원으로서의 긍지를 다지게 해준 하나의 큰 계기가 되었는데요. 이 때 아마도 예수회에서 받을 수 있는 최대치의 은총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아주 큰 기쁨을 누렸습니다. 총회에서 만난 예수회원들과 함께 공동으로 식별하는 과정 안에서 우리 조직이 얼마나 잘 준비되어 있고 그것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힘의 원천이 예수님이라는 것 역시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수회의 모든 바탕이신 예수님의 힘을 믿고 함께 공동으로 식별하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고민해 온 모든 길 위에 우리가 있는 것이지요. 그 전까지만 해도 여전히 개인적으로 원하는 것을 마음 속에 품고 있었습니다. 제가 특수교육을 공부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라르쉐 공동체와 같은 작은 공동체를 만드는 시골 본당 신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며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는데 이제는 바뀌었어요. 예수회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더욱더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오로지 한가지, 제가 속한 조직이 훨씬 더, 점점 더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선교사의 삶은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먼저, 전제로 하고 싶은 것은 예수님을 모르는 분들 속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늘 활동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바탕 위에 선교는 크게 세 가지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예수님을 모르는 분들 속에서도 활동하고 계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그들과 함께 하고 계신지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선교사는 결국 발견하는 사람인 것이지요. 두번째로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에게 관심을 갖는 분들께 예수님을 증거하고 소개하는 일입니다. 캄보디아는 가난하지만 아주 밝은 곳입니다. 밝고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고 그들의 가치를 발견하고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제게는 큰 선물이었습니다. 다만 이제는 캄보디아의 아이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꿈을 키울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하는 숙제가 생겼습니다. 그 숙제 앞에 저는 우리나라를 자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성장하면서 많은 부분 잘 살게 되었지만 동시에 우리가 가진 좋은 정서와 가치들을 맞바꾸게 된 것도 많지 않나 싶어요. 최근 캄보디아의 교육 사도직에서 크게 학교를 짓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저는 아직 캄보디아가 지닌 소중한 가치들을 잃지 않는 교육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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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소자들,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요즘 사회는 청년들에게 결과물을 도출하는게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청년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신부나 수도자가 되어서도 뭔가를 내가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특히 그 안에서 자기의 꿈이나 희망보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에 싸여 허덕이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각자가 우리를 돌아보고 자신을 알고 내가 이미 가진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어떻게 사회와 나눌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어느 때 보다도 필요한 시기인 것이지요.

 

특히, 수도자는 결국 리더가 될 사람들이에요. 다만 리더로서 끌고가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돕는 리더로 부르심 받은 사람이지요. 우리에게는 영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이가 필요할 뿐입니다. 여전히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필요한 곳에 가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려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고 우리가 속한 세상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넓다는 것을 알았으면 해요. 성소자들 역시 세계 속 예수회라는 큰 틀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하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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