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서 향기가 납니다. 최대제 신부 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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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LA의 성 아그네스 성당 안에 위치한 이냐시오 카페

그 한 켠에 쓰인 소개글 속 마태 복음 구절이 눈에 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25,40)

 

이에 덧붙여 ‘우리 공동체 안에서 형제 자매들과 함께 나눈 이 작은 커피 한 잔이

예수님께 드리는 봉사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하는 최대제 신부.

 

매일 같이 하느님을 위해 커피를 내린다는 그에게서 진한 커피 향기가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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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전문가 신부님이라니, 재미있는 조합인데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우연히 커피를 알게 되었습니다. 2006년 10월, 후원회에서 일할 때 봉사자들과 함께 강원도 풍수원 성당으로 나들이를 갔지요. 어떤 자매님이 보온병에서 커피를 따라 주는데 맛이 특별했습니다. 무슨 커피인데 이렇게 맛있냐고 물어보니까 핸드 드립으로 내린 커피라면서, 가르쳐주는 곳이 있다고 했습니다. 재미있을 것 같아 찾아가서 배웠어요. 그 때부터 혼자서 커피를 내려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커피를 내리고 있으면 그 향이 좋다며 사람들이 하나 둘씩 찾아왔습니다. 제 커피가 맛있다고, 좋아하는 모습들을 보면 제 마음도 신이 났습니다. 그렇게 점점 더 커피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핸드드립 커피는 신선한 원두가 생명이에요. 그런데 제게는 돈이 없어서 좋은 원두를 살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결국 생두를 사서 커피 콩을 직접 볶아 먹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커피에 대해 알아가고 나만의 핸드드립 방식과 커피 철학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대상으로 의도치 않은 커피 교육을 하게 되었지요. 제가 하는 커피 강의는 자연스레 예수회 영성이 들어갑니다. 커피 내릴 때 그 시간에 감사하고, 커피를 생산한 농민들에게 감사하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빌어주는 일. 그것은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예수회 영성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강의 끝에는 늘 말합니다. “Coffee is in God, God is in Coffee” (하느님 안에 있는 커피, 커피 안에 계신 하느님) 나중에 이 말을 예수회원들에게 해 주었더니 독특하다고 아주 재미있어 하더군요. 결국 예수회 센터에 이냐시오 카페를 만들고 봉사자들을 양성하게 되었습니다.

 

 

커피가 사목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하나요?

 

2010년 12월에 LA에 있는 아그네스 성당 본당 신부로 파견된 뒤, G-grader라는 커피 감별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그 힘으로 2011년 11월, 아그네스 성당 안에 카페를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커피는 제 사목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커피를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고, 영성을 드러냅니다. 또 커피를 통해 직업 윤리나 소비자 의식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지요. 아그네스 성당 카페는 제가 가르친 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됩니다. 개신교, 불교, 천주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종교에 상관없이 카페에서 봉사를 하지요. 카페를 오픈하고 처음 2년 동안 커피 수익금 중 일부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내다가 그 후로는 카페 운영비를 제외한 모든 수익을 국가와 종교를 초월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냅니다. 우리는 그것을 ‘0정책’이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이 곳에서 저에게 커피 교육을 받은 사람만 거의 1,000명이 됩니다. 그 중 뛰어난 커피 전문가도 있고, 카페를 운영하거나 커피 책을 쓰는 사람도 있지요. 커피를 배우면서 가톨릭 신자가 되거나 냉담을 회복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 어찌 사목이 아니겠습니까.

 

 

입회 전, 청년 ‘최대제’ 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어떻게 예수회원이 되셨나요?

 

늦은 나이에 예수회에 들어왔습니다. 1994년, 서른 여덟 살에 들어왔지요. 입회 전까지 참으로 많은 일을 경험했습니다. 고등학교는 자퇴했고, 대학 연구실 사환, 동물병원 조수, 비누 외판원, 책 외판원, 정수기 판매, 신문 배달, 오토바이 센터, 무역회사일도 했고요. 군대에서는 교관을 했습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나서야 검정고시를 봐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종교도 다양한 체험을 했지요. 절에도 다녔고, 개신교회에도 가 보았고, 여호와의 증인 교리도 배웠고, 또 세례도 안 받은 상태에서 성당에 가서 성체를 받아 모신 적도 있습니다. 방황을 많이 했지요. 1980년 8월 14일에 진주 칠암 성당에서 현재 군종 교구장이신 유수일 주교님에게서 가톨릭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이후 신앙생활 하면서 점점 수도자나 성직자가 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회에 들어오기 전에 작은 형제회, 마리아회, 아우구스티노회, 신언회, 한국 순교복자회, 오순절 평화의 마을 등 여러 수도회에서 지원자 생활을 하거나 성소 모임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긴 방황 끝에 결국 제가 부르심을 받은 건 이 곳, 예수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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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방황 끝에 만난 예수회의 양성 과정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하느님을 만나셨는지요?

 

수련원에서 30일 피정 총고해 전, 심각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내 과거의 허물과 죄를 끄집어 낸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요. 과거의 허물을 들추어내면 쫓겨날 것 같고, 동시에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 수련원 생활이 자유롭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진퇴양난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예수님, 성령님, 성모님, 천사들, 한국 순교 성인들, 이냐시오 성인, 로베르토 성인 등등 기도할 수 있는 모든 분들께 제발 예수회에서 쫓겨나지 않게 도와주십사 청했습니다. 이미 많은 실패를 했고, 나이도 많아서 도무지 밖에서 벌어먹고 살 자신이 없었지요. 그 때의 심정은 루카 복음 16장 3절의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구나.” 딱 이 말씀대로였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회에서 살아남고 싶었습니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하느님, 저를 예수회에서 쫓아내시려면 예수회 개 집에서라도 살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총고해 당일 아침, 성당에서 기도를 하는 중에 문득 ‘어, 기도가 잘못되었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땅을 파 먹으면 어떻고, 빌어먹으면 어떤가? 어디에서 살든지 하느님 앞에서 떳떳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그러면서 성경을 펼쳤는데 시편 51장 12절의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제게 만들어 주시고 굳건한 영을 제 안에 새롭게 하소서.” 이 말씀이 나를 변화시켰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예수회에서 살아도 좋지만 밖에서 살아도 괜찮다. 나를 자유롭게 완전히 드러내자.” 총고해 시간이 다가오면서 다시 불안해질 때마다 같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불안해지고 기도하고를 반복하면서 과거 죄 목록을 적었습니다. 수련장 신부님 앞에서 그냥 읽자고 결심했습니다.

 

드디어 총고해 시간이 되었습니다. 수련장 신부님께서는 눈을 감고 계시고 저는 죄 목록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멈추려고 해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펑펑 울면서 다 읽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잠시 후 수련장 신부님께서 눈을 뜨시더니 “로베르토 형제, 하느님께서는 형제의 죄에 대해 관심이 없어요. 지금부터 잘 살기를 바라실 뿐입니다. 그러니 이제 열심히 사십시오.” 그 순간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고 기쁨이 온 세상을 가득 채우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 평화와 기쁨은 여태껏 체험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고해를 마치고 나오니 세상은 이미 변화되어 있었습니다. 부는 바람은 하느님의 입김이었고, 밝게 빛나는 태양은 하느님의 손길이었습니다. 발길에 치이는 돌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이 느껴졌고, 흔들리는 잎새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이 보였습니다. 그 때 깨달았습니다. “나도 하느님 사랑의 작품, 태양도 달도 바람과 물도 하느님의 사랑의 작품이구나. 모든 것이 하느님의 사랑의 작품이기 때문에 형제 자매가 되는구나.” 세상 만물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듯 느껴졌습니다. 총고해 때의 체험으로 두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기도는 기도를 하면서 배운다는 것, 그리고 사제는 하느님을 만나게 해 주는 사람이라는 것. 그런 체험이 있었기 때문에 수련원 생활은 자유롭고 즐거웠습니다.

 

수련원을 마치고 신학원에 살면서 또 한 번의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이번에는 열등감이었습니다. 동기들은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공부도 잘 하고, 어릴 때부터 신앙 생활을 해 왔고, 영혼도 순수하고, 부모 형제로부터 응원을 받는 데 나는 아니었습니다. 나이 많지, 공부 못 하지, 어릴 때부터 신앙 생활을 하지도 않았지, 부모 형제들은 다 가톨릭이 아니지… 그런 열등감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회 생활이 즐거운 것이 아니라 ‘창살 없는 감옥’이었습니다. ‘나가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억만 금을 준다해도 자유롭지 않은 데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1997년 신학원 연피정을 했습니다. 저는 피정을 끝내고 예수회를 떠나리라 마음 먹고 있었습니다. 피정 중 송봉모 신부님이 요한 복음 15장 ‘나는 참포도나무다.’ 부분을 묵상 자료로 주셨습니다. 15장을 묵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16절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이 말씀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내가 너를 택했다…’ 이 말씀 앞에서 저는 어떤 핑계도 댈 수가 없었습니다.

 

“하느님, 저는 나이가 많은데요…” “내가 너를 택했다.”

“저는 공부를 못 하는데요…” “내가 너를 택했다.”

“저는 영혼이 깨끗하지 못한데요…” “내가 너를 택했다.”

 

그 피정 이후로 열등감이 사라졌고 성소에 대한 의심도 없어졌습니다. 하느님 말씀은 참으로 살아있다는 체험을 한 피정이었습니다. 수련원 때 총고해의 체험과 신학원 때의 피정 중의 체험 덕분에 예수회원으로서의 삶을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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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은 행복하십니까?

 

나는 매우 행복합니다.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가진 것이 많이 있어서 바랄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또 하는 일이 잘 되고 어려움이 없어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일이 잘 안 되고 어려움이 있어도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이 되지 않을 때에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때이다.’라는 신념이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찾게 해 줍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가진 분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살면 하느님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고, 그래서 하느님 것이 나의 것이 됩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살기 위해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말씀을 매일 듣고 새기고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후원회 일 할 때도 그랬지만 아그네스 성당에 본당 신부로 올 때도 마음은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기도했고 그 덕분에 싫어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순전히 나의 힘으로만 된 것일까요? 나는 그것을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나는 행복합니다. 너무 모범적이고 교과서적인 답 같지만 다른 답은 없습니다. 하느님만으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