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i Gesuiti, 우리 예수회원들은 – 황정연 S.J.
본문
로마,
이 도시는 화려하고도 아름답다.
위대한 제국, 교종 프란치스코, 오드리 햅번이 생각나는 곳.
여기에 가톨릭 교회의 심장이 있다.
교회의 중심을 찾아 온 수많은 사람들이
얽히어 살아가는 이 곳에
아주 평범하고 겸손한 한 사제가 있다.
그는 사람들을 교회로, 로마로 오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제가, 교회가 사람들 곁으로 가야한다고 말할 뿐이다.
주어진 삶 속에서 그저 열심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이 사제는 로마에서 무엇을 발견했을까.
신부님께는 사제로서의 부르심을 느낀 강렬한 장면(scene)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마음 깊이 자리잡은 하나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성체를 제대 위로 들어올리고 그 성체를 바라보는 사제의 모습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참석했던 미사에서 제 마음에 새겨진 형상입니다. 처음 가 본 도림동 성당은 아주 크게 느껴졌습니다. 낯선 공간이 었고 낯선 전례가 이어졌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특별한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사제가 성체를 천천히 들어올리자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거양된 성체가 정점에 이르러 멈추었을 때, 시간마저 모두 멈추어진 듯했습니다. 옅어지는 종소리, 이어지는 장엄한 침묵 속에서 사제와 모든 신자들이 성체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성전에 있는 모든 이들이 거룩한 고요 안에서 성체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는 그 순간은 한 폭의 그림처럼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 이미지는 제 성소 여정의 출발점이 되었고 이후 저의 삶의 여정 마디마디 마다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제대에서 2006년 7월 15일, 사제로서 첫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사실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제 신앙은 아주 빈약했습니다. 입시를 준비하는 동안 불성실했던 저 자신의 모습은 미성숙한 신앙 안에서 늘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공부도 그렇게 게을리하면서, 하느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지요. 미사는 위로의 시간이기보다 죄스러움과 나약함을 대면해야만 하는 불편한 시간이었습니다. 그저 대학만 간다면 이 모든 어려움이 사라지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공학도로서 시작했던 대학생활은 참담했습니다. 1987년, 제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전공 서적이 아닌 군부 독재의 냉혹한 현실이었습니다. 역사의 부름 앞에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어 보였습니다. 이 시기에 처음으로 어떤 예수회원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1988년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명동성당 언덕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선배가 어떤 신부님을 모셔왔습니다. 사제들 중에서 유일하게 우리에게 다가와 준 이 분은 예수회 정일우(John V. Daily) 신부님이었습니다. 신부님께선 어두운 밤, 성모상 앞에 모여 있던 저희들 가운데 오셔서 저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일깨워 주는 말씀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때, 장차 예수회 안에서 깊은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가게 될 은총의 씨앗이 뿌려졌던 것 같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엔지니어로 일했습니다. 생활은 안정적이었고, 일도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는 충만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수녀님으로부터 예수회 성소모임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성소 모임에서 많은 예수회원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가깝게 느껴지고 생각이 잘 통하는 분들이 수도자라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예수회원들이 자유로운 분들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그분들 앞에서 저도 아주 자유로웠습니다. 침묵 안에서 말씀을 묵상하는 체험을 통해 제가 하느님께 가까이 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계속 예수회에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벌써 6년 이상 로마에서 강의를 하며 지내고 계십니다. 교회의 중심인 로마에서 느끼는 예수회는 어떤 모습인가요?
이곳 로마에서는 우리 예수회가 교황청과 아주 가깝고 전체 교회를 위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우선 예수회 총원이 성 베드로 성당과 아주 가까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수회가 교회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단지 교회의 중심부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가 아니라 변방에 나가 있는 예수회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모든 대륙의 다양한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수회원들과 예수회 총원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교황청에 예수회가 기여할 수 있는 바가 큽니다.
이런 중요성이 잘 드러난 예수회의 사도직이 바로 그레고리안 대학입니다. 이 대학은 교황청의 위탁을 받아 예수회원들이 운영하는 교황청 대학교입니다. 이 학교가 교회에 미치는 영향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대합니다. 최근 시성되신 성 바오로 6세 교황과 성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께서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공부하셨지요. 그리고 한 통계에 따르면 현재 추기경 중 약 50%가 그레고리안에서 공부했다고 합니다. 현재 약 120여 개국에서 온 2,50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교황청과 세계를 연결하고 교회의 현재와 미래에 다리가 되는 이 대학 사도직은 예수회의 사명의 중요성과 전체 교회의 영향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척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박사 과정 직후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 파견되었습니다. 지금은 이곳에서 신학적 인간학을 바탕으로 한 임상심리학을 연구하며 예수회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로마에서 가장 가깝게 지내시는 예수회원과의 우정을 나누어 주실 수 있을까요?
2011년 로마에 와서 2년 동안은 교수 공동체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2013년부터 예수 국제 신학원 양성팀의 일원으로 서품을 준비하는 예수회 수사님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두 공동체 모두 여러 나라에서 온 예수회원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사명을 받고 로마에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아쉬웠던 것은 “자연”이었습니다. 로마는 모든 곳이 인간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건물과 예술작품으로 가득합니다. 정말 아름답고 신비로운 도시이지만, 녹지 공간은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그래서 주말에 야외로 나가는 형제들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 때 아르헨티나 예수회원으로 윤리 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미겔 야네스 (Miguel Yanez) 신부가 저에게 함께 등산을 가지고 제안했습니다. 그때부터 함께 로마 근교의 산이나 생태 공원을 방문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미겔은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아르헨티나 관구장 소임을 하실 때 예수회에 입회했습니다. 교황님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는 예수 회원들 중에 한 명입니다. 덕분에 교황에 관련된 글과 인터뷰, 학술 모임 등으로 바쁘게 지내기도 합니다.
미겔과의 우정이 깊어 지게 되었던 중요한 계기는 제가 삼수련을 마치고 돌아온 후 함께 했던 산책이었습니다. 제가 마닐라에서 삼수련을 받았던 일년 동안은 미겔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2015년 가을에 다시 만나 함께 산책을 나갔을 때 미겔은 그간 겪었던 여러 일들, 특히 힘들었던 일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때 이 친구가 이 시간을 기다려 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동시에 저와 미겔이 좋은 벗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 둘은 많이 다릅니다. 우선 양성 배경이 크게 다릅니다. 사회에 대한 관점이나 신학적 입장 역시 다를 때가 있습니다. 자기 주장도 강한 친구라 제 생각과 자신의 생각이 다를 때 항상 표현을 합니다. 이런 서로의 다름을 바탕으로 한 솔직한 대화가 도움이 됩니다. 다른 관점에서 삶을 바라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대화할 수 없을 때 한 사람의 관점은 좁아지고 경직되기 쉽습니다.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부담 없이 나눌 수 있는 친구를 가지는 것은 참 소중합니다. 이런 우정을 선물해 주시는 하느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회원들의 삶에는 잦은 만남과 헤어짐이 있습니다. 만날 때 허물없이 반갑고 헤어질 때 흔쾌히 축복해 줄 수 있는 우정이 필요합니다. 제게 미겔은 그런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입니다.
로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체험은 무엇인가요?
Habemus Papam! (우리에게는 교황이 있다!)
2013년 3월 13일 교황 프란치스코의 선출은 교회 전체나 저 개인에게 여러 면에서 특별한 사건이었습니다. 2012년 선종하신 마르티니 추기경님께서 가톨릭 교회가 시대에 200년은 뒤쳐져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 역시 로마에서 지내면서 교회의 문제를 심각하게 느꼈습니다. 성직자의 권위주의나 교회 내 성추행 등 문제가 산재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를 가장 무겁게 만드는 것은 희망적인 움직임이 너무나 미미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답답함 안에서 지내던 2013년 2월, 놀라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베네딕토 16세의 퇴위 발표였습니다. 커다란 충격 안에서 새로운 교황의 선출을 기다렸습니다. 성 베드로 광장에 가서 시스티나 성당의 굴뚝을 바라보며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흰 연기를 기다렸습니다. 저는 공동체에서 종소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교황이 선출되면 로마의 모든 교회가 종을 울리기 때문입니다. 3월 13일 저녁, 형제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있을 때 종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서로를 바라보면서 웃었습니다. 형제들과 함께 흥분된 마음으로 서둘러 성베드로 광장에 갔습니다. 제 기분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천사들에게 듣고 경배를 드리러 가는 목동의 마음과 같았습니다.
광장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곧, 새로운 교황이 소개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예수회원인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교황에 선출되었습니다. 새로운 교황님은 “Fratelli e sorelle, Boua sera!(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라는 친근한 이태리어 저녁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교황님은 신자들을 위한 첫 강복 이전에 자신을 위해서 침묵 가운데 기도해 달라고 청하셨습니다. 교황은 고개를 숙이셨고 바티칸 광장에 있던 모든 신자들은 침묵 안에서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 후 교황님은 고개를 드시어 그 곳에 모인 모든 신자와 세상의 모든 선한 이들을 위해서 강복하셨습니다. 소박하고, 친근하고, 겸손한 교황 프란치스코와 함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던 이 체험은 참 소중하게 기억됩니다.
또한, 교황 프란치스코는 예수회원들과 형제적인 관계를 소중히 여기십니다. 교황 선출 초기에 많은 예수회원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여전히 예수회원인가 라는 질문을 했었습니다. 전례 없는 일이라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황님께서 어느 날 스스로 답을 주셨습니다. 2014년 1월초에 예수회 사제 베드로 파브르의 시성 감사미사를 예수회원들과 함께 집전하실 때 강론을 여는 두 단어로 답을 주셨습니다. 그 두 단어는 “Noi Gesuiti(우리 예수회원들은)”였습니다. 당신 역시 예수회원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리고 해외 방문 때마다 그 지역 예수회원들과 모임을 가지십니다. 2014년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도 서강대학교 예수회 공동체에서 한국 예수회원들과 뜻깊은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최근 예수회원들의 만남에서 교황님은 교회의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에게 “식별”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저희들의 중요한 임무라고 직접 당부하시기도 합니다. 신자들의 여러 어려운 문제들을 대할 때 각 개인의 역사와 현실을 고려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하느님의 뜻을 찾아가는 목자들의 교회로 성장하기 위해서 예수회원들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신부님께서는 어떤 예수회원으로 기억되시기를 바라시나요?
제가 예수회에 입회한지 벌써 22년이 지났습니다. 이 여정 안에서 예수회 사제의 정체성을 배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회원은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체험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공부를 많이 하지만, 가난하고 배움이 기회가 적은 사람들과 가까이하는 사람들이여야 합니다. 어떤 청년이 한 사제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젊은이들에게 교회로 오라고 하실 필요 없습니다. 신부님이 먼저 가난한 이들에게 가십시오. 그러면 저희들이 따라갈 것입니다.” 저는 이 젊은이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사제가 되고 싶습니다. 아픔을 지닌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곳에서 젊은 영혼을 만나는 예수회 사제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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