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교황님 기도지향: 조국을 떠나는 이주민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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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제가 머물고 있는 로마의 예수회 공동체는 관광지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판테온 신전과 트레비 분수 사이에 있는데, 공동체 대문을 나오는 순간 관광객들의 무리와 섞이게 됩니다. 가끔 나와서 산책을 하곤 하는데, 길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피부색도 다양하고, 사용하는 언어도 다양합니다. 이는 비단 여행객 뿐만 아니라 길에서 만나는 상인들에게도 적용됩니다.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조국을 떠나 로마에 온 사람들입니다. 누군가는 여행으로, 누군가는 유학으로, 누군가는 일자리를 찾으러. 그런데 이는 비단 로마만이 아니라 서울 한복판을 걸어도 똑같이 느낄 수 있는 것이죠.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조국을 떠나 새로운 나라에 옵니다. 그렇게 보면 ‘이주’라는 현상은 우리가 TV나 신문에서만 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보편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주민들을 자세히 보면, 모든 이주가 같은 색깔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 바로 ‘자유’의 유무인데, ‘자유로운 이주’가 있는가하면 ‘자유 없이 내몰린 이주’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학이나 일자리 찾기처럼 나의 더 큰 꿈을 위해 조국을 떠나는 것’과 ‘배고픔과 박해, 전쟁 때문에 조국을 떠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이에 대해 ‘떠날 자유와 머무를 자유’라는 키워드로 이야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 “이주는 언제나 자유로운 선택이어야 하지만 많은 경우에, 심지어 오늘날조차 그렇지 못합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분쟁이나 자연재해 때문에, 또는 더 단순하게는 모국에서 품위 있고 번영하는 삶을 살아갈 수 없기에 떠나도록 내몰리고 있습니다.”
교황님 말씀처럼 이주는 언제나 자유로운 선택이어야 합니다. 소위 아메리칸 드림처럼 새로운 꿈을 위해 떠나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조국에서 평화롭게 머무를 자유’를 박탈당해 어쩔 수 없이 피난길에 오릅니다. 더군다나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폭력, 인신매매, 빈곤, 기아, 자연재해의 희생양이 됩니다. 3살밖에 안 된 시리아 난민 ‘에이란 쿠르디’를 기억하십니까? 몇 년 전 파도에 떠밀려 온 아이의 시신 사진은 전 세계를 슬픔에 잠기게 했습니다.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모아야 할까요? 저는 우리의 기도의 방향을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 보기를 제안합니다.
하나는 ‘이주민에 대한 환대’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더 이상 이주민들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겠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조국을 떠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변 나라들에서는 이주민과 난민에 대해 열린 마음을 지니고 이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교황님께서는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 25,35-36)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주민들을 그저 잘 대해주는 것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들 안에서 ‘문을 두드리시는 그리스도를 알아보아야 한다.’고 일깨워 주셨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주로 내몰리지 않을 권리, 즉 모국에서 평화롭고 품위 있게 살아갈 기회’가 보장받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교황님 말씀처럼, “주된 책임은 모국과, 좋은 정치를 실현하도록 부름받은 모국의 지도자들에게 있음이 분명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국민들을 궁지로 몰아 넣는 정치지도자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또한 국제 사회가 이들에 대해 압력을 넣도록 함께 마음을 모으면 좋겠습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 25,35-36)
글: 지형규 요한 신부
*교황 프란치스코, 제109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담화, 2023년 9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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